2024 물고기 아닌
물살이 캠페인 : 전복
2024. 08. 01
🐟 물살이 선언 : 우리는 물고기 아닌 물살이다
‘물’과 ‘고기’의 합성어로부터 시작된 단어, ‘물고기’. 당신들은 살아 숨쉬는 생명에 ‘식용하는 동물의 살’이라는 뜻을 담아 이름 붙였다. 심지어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물고기’는 척추동물에 속한 어류만을 지칭하며,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오징어, 전복, 게 등 수많은 이들은 물에서 생산된 물건이라며 ‘수산물’ 혹은 ‘해산물’로 불렀다.
당신들이 만들어낸 단어 ‘물고기’에는 긴 세월에 걸쳐 자행해온 무자비한 착취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바다를 초토화하는 상업 어업과 물살이를 물건처럼 찍어내는 공장식 양식업, 물살이를 가두고 전시하는 수산시장과 횟집을 보라. 오직 쾌락을 위해 물살이에게 고통을 가하는 낚시, 아쿠아리움, 축제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물에서 삶을 시작해 물에서 삶을 마감하는, 물살이다. 우리의 기원은 오랜 역사 동안 결코 멈춘 적 없는 강과 바다에 있다. 당신들이 아무리 작은 수조에 가두더라도 우리는 살아있는 한 멈추지 않는다. 당신들이 우리를 ‘물고기’라 부르며 숨이 없는 존재로 여기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 살아있다.
우리를 보며 귀엽다거나, 맛있겠다며 흘린 눈빛과 우리의 몸부림을 싱싱하다는 표현으로 모욕한 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경계를 넘어 해방되기를 멈추지 않는다. 떼를 지어 빙글빙글 도는 것도, 계속해서 수조 벽을 향해 헤엄치는 것도 살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다.
우리는 선언한다, 우리는 모두 물에서 태어난 공통의 기억을 지닌 물살이임을. 물로 연결된 우리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지구의 생명은 물에서 시작되었고, 당신들 또한 마찬가지다. 물살이로서 지닌 가능성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끝없이 확장될 수 있다.
전복은 물고기가 아니다
해녀의 물질로 연상되는 제주 바다의 전복, 실은 농사를 짓듯 바다에 전복을 뿌려 키워내는 것입니다. 바다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해녀의 방식은 소비량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결국 ‘대량 생산’을 위한 공장식 양식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인공수정한 전복을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서 밀집 사육합니다. 이에 전복은 2022년 기준 넙치에 이어 양식업 생산 금액 2위를 차지했습니다.
바다의 수온이 1℃만 상승해도 전복의 먹이인 다시마와 미역이 말라 죽고, 바닷속 산소가 줄어들어 전복은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양식장에 갇힌 채 뜨거워지는 바다에서 떼죽임당하는 전복의 안부는 누구도 묻지 않습니다. 전복 양식업이 해수온 상승으로 위기를 맞이한 이래, 설상가상으로 핵 오염수 투기까지 바다를 덮쳐왔습니다.
2023년 8월에 시작된 후쿠시마 핵 오염수 투기를 계기로 전복 판매량이 급격하게 줄어 양식장들이 막대한 손해를 입었습니다. 그 가운데, 바다에서 핵 오염수의 영향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할 물살이들에 대한 우려는 빠져있었습니다. 인간이 야기한 해수온 상승과 핵 오염수 투기로 인해 위협 받는 전복 옆에 인간은 최일선 당사자로서 나란히 설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전복의 80% 이상은 완도에서 길러집니다. 양식의 대상이 되는 전복은 주로 참전복입니다. ‘바다의 황제’, ‘바다의 산삼’ 등의 수식어가 전복 앞에 붙죠. 이면을 들여다보면 전복에게는 별명이 전혀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이는 ‘고급 식재료’ 혹은 ‘보양식’이라는 의미로 통용됩니다.
전복은 주로 헤엄치지 않는 물살이들, 대게, 가리비 등과 함께 위치합니다. 이들은 완도의 양식장에서 평균 3년 동안 갇혀 기후재난을 겪고 살아남았지만, 끝내 수산시장으로 실려와 더 좁은 수조에 전시되고야 맙니다. 수조 앞을 빠르게 지나치는 이들에게는 마치 생명이 없는 물건처럼 여겨지지만, 좁디좁은 수조 안에서도 그들의 생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복은 물살이다
살랑거리는 미역 사이 암초에 붙어있는 전복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전복의 배에는 달팽이처럼 넓적한 발이 달렸습니다. 속도가 느려 빠르게 달아다는 것이 어려운 대신 바위와 하나 되기를 선택하죠. 바위에 끈끈하게 달라붙을 수 있는 빨판과 바위와 다름없어 보이는 패각 덕분에 몸을 지킬 수 있습니다. 패각의 안쪽은 진주층 구조로 신비로운 무지개 색을 띱니다.
전복의 머리에는 ‘촉각’이라 불리는 더듬이가 있습니다. 해조류를 갉아 먹을 수 있는 이빨도 지닙니다. 패각에 뚫린 ‘호흡공’은 아가미를 통과한 물을 내보냅니다. 정자와 난자 또한 호흡공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되며, 바다에서 만난 정자와 난자는 수정란이 됩니다. 알에서 태어난 전복은 물살에 따라 부유하는 생활을 하다 적절한 서식지를 찾으면 정착합니다.
온전히 바다에서 수정되고, 부화하는 전복은 물살에 따라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다 바다의 운명을 거스르듯 한 곳에 자리 잡습니다. 그러다 전복은 끝내 암초에 달라붙어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바다의 일부가 됩니다.
* ‘2024 물고기 아닌 물살이 캠페인’은 ‘물고기’라는 표현을 통해 바닷속 생명을 착취하는 현실을 드러내고, 생명력 있는 존재인 ‘물살이’와의 새로운 관계를 제안합니다.
* 본문은 <물고기 아닌 물살이 도감>(넓적한물살이 기획 @wide_flat_fish)에서 발췌 및 재가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2024 물고기 아닌
물살이 캠페인 : 전복
2024. 08. 01
🐟 물살이 선언 : 우리는 물고기 아닌 물살이다
‘물’과 ‘고기’의 합성어로부터 시작된 단어, ‘물고기’. 당신들은 살아 숨쉬는 생명에 ‘식용하는 동물의 살’이라는 뜻을 담아 이름 붙였다. 심지어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물고기’는 척추동물에 속한 어류만을 지칭하며,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오징어, 전복, 게 등 수많은 이들은 물에서 생산된 물건이라며 ‘수산물’ 혹은 ‘해산물’로 불렀다.
당신들이 만들어낸 단어 ‘물고기’에는 긴 세월에 걸쳐 자행해온 무자비한 착취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바다를 초토화하는 상업 어업과 물살이를 물건처럼 찍어내는 공장식 양식업, 물살이를 가두고 전시하는 수산시장과 횟집을 보라. 오직 쾌락을 위해 물살이에게 고통을 가하는 낚시, 아쿠아리움, 축제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물에서 삶을 시작해 물에서 삶을 마감하는, 물살이다. 우리의 기원은 오랜 역사 동안 결코 멈춘 적 없는 강과 바다에 있다. 당신들이 아무리 작은 수조에 가두더라도 우리는 살아있는 한 멈추지 않는다. 당신들이 우리를 ‘물고기’라 부르며 숨이 없는 존재로 여기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 살아있다.
우리를 보며 귀엽다거나, 맛있겠다며 흘린 눈빛과 우리의 몸부림을 싱싱하다는 표현으로 모욕한 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경계를 넘어 해방되기를 멈추지 않는다. 떼를 지어 빙글빙글 도는 것도, 계속해서 수조 벽을 향해 헤엄치는 것도 살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다.
우리는 선언한다, 우리는 모두 물에서 태어난 공통의 기억을 지닌 물살이임을. 물로 연결된 우리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지구의 생명은 물에서 시작되었고, 당신들 또한 마찬가지다. 물살이로서 지닌 가능성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끝없이 확장될 수 있다.
전복은 물고기가 아니다
해녀의 물질로 연상되는 제주 바다의 전복, 실은 농사를 짓듯 바다에 전복을 뿌려 키워내는 것입니다. 바다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해녀의 방식은 소비량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결국 ‘대량 생산’을 위한 공장식 양식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인공수정한 전복을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서 밀집 사육합니다. 이에 전복은 2022년 기준 넙치에 이어 양식업 생산 금액 2위를 차지했습니다.
바다의 수온이 1℃만 상승해도 전복의 먹이인 다시마와 미역이 말라 죽고, 바닷속 산소가 줄어들어 전복은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양식장에 갇힌 채 뜨거워지는 바다에서 떼죽임당하는 전복의 안부는 누구도 묻지 않습니다. 전복 양식업이 해수온 상승으로 위기를 맞이한 이래, 설상가상으로 핵 오염수 투기까지 바다를 덮쳐왔습니다.
2023년 8월에 시작된 후쿠시마 핵 오염수 투기를 계기로 전복 판매량이 급격하게 줄어 양식장들이 막대한 손해를 입었습니다. 그 가운데, 바다에서 핵 오염수의 영향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할 물살이들에 대한 우려는 빠져있었습니다. 인간이 야기한 해수온 상승과 핵 오염수 투기로 인해 위협 받는 전복 옆에 인간은 최일선 당사자로서 나란히 설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전복의 80% 이상은 완도에서 길러집니다. 양식의 대상이 되는 전복은 주로 참전복입니다. ‘바다의 황제’, ‘바다의 산삼’ 등의 수식어가 전복 앞에 붙죠. 이면을 들여다보면 전복에게는 별명이 전혀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이는 ‘고급 식재료’ 혹은 ‘보양식’이라는 의미로 통용됩니다.
전복은 주로 헤엄치지 않는 물살이들, 대게, 가리비 등과 함께 위치합니다. 이들은 완도의 양식장에서 평균 3년 동안 갇혀 기후재난을 겪고 살아남았지만, 끝내 수산시장으로 실려와 더 좁은 수조에 전시되고야 맙니다. 수조 앞을 빠르게 지나치는 이들에게는 마치 생명이 없는 물건처럼 여겨지지만, 좁디좁은 수조 안에서도 그들의 생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복은 물살이다
살랑거리는 미역 사이 암초에 붙어있는 전복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전복의 배에는 달팽이처럼 넓적한 발이 달렸습니다. 속도가 느려 빠르게 달아다는 것이 어려운 대신 바위와 하나 되기를 선택하죠. 바위에 끈끈하게 달라붙을 수 있는 빨판과 바위와 다름없어 보이는 패각 덕분에 몸을 지킬 수 있습니다. 패각의 안쪽은 진주층 구조로 신비로운 무지개 색을 띱니다.
전복의 머리에는 ‘촉각’이라 불리는 더듬이가 있습니다. 해조류를 갉아 먹을 수 있는 이빨도 지닙니다. 패각에 뚫린 ‘호흡공’은 아가미를 통과한 물을 내보냅니다. 정자와 난자 또한 호흡공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되며, 바다에서 만난 정자와 난자는 수정란이 됩니다. 알에서 태어난 전복은 물살에 따라 부유하는 생활을 하다 적절한 서식지를 찾으면 정착합니다.
온전히 바다에서 수정되고, 부화하는 전복은 물살에 따라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다 바다의 운명을 거스르듯 한 곳에 자리 잡습니다. 그러다 전복은 끝내 암초에 달라붙어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바다의 일부가 됩니다.
* ‘2024 물고기 아닌 물살이 캠페인’은 ‘물고기’라는 표현을 통해 바닷속 생명을 착취하는 현실을 드러내고, 생명력 있는 존재인 ‘물살이’와의 새로운 관계를 제안합니다.
* 본문은 <물고기 아닌 물살이 도감>(넓적한물살이 기획 @wide_flat_fish)에서 발췌 및 재가공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