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동물권 행진 :
물고기 아니고 물살이
윤나리 캠페이너 2021. 08. 25
안녕하세요, 저는 동물해방물결의 윤나리 활동가입니다. ‘물고기는 당연히 물고기지!’ 황당함과 호기심으로 광고를 클릭하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뭔가를 깨닫고 클릭하신 분들도요. 대체 왜 물고기가 아니라 물살이라는 건지, 찬찬히 이야기를 풀어볼까 해요.
물+고기?
우리는 평소 어류 동물을 만나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물고기’ 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물고기’라는 말.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나요?
‘물고기’라는 단어는 ‘물’과 “식용하는 동물의 살”이라는 뜻의 ‘고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속에 사는 수많고 다양한 어류 동물을 우리는 한꺼번에 ‘물고기’라 부르고 있는 것이죠.


물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데... ‘고기’라고요?
마땅히 살아 숨 쉬는 독립적인 존재를 지칭하는 단어가 인간이 ‘식용하는 살’인 것은 기괴하고 부당합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그저 다른 이의 ‘살덩어리’, ‘고깃덩어리’라고 부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요.
위의 비유가 와닿지 않거나 불쾌했다면, ‘물고기는 먹는 거지’ 또는 ‘물고기랑 사람이랑 같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거예요.
동물도 아픔을 느껴요
많은 분들이 무의식적으로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곤 합니다. 이런 습관의 배경에는 인간은 동물이 아니라거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질적으로 우월하다는 인식이 깔려있죠.
그런데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 바로 인간도 동물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동물이라면, 정도와 방법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고통을 느낀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인간과 개는 물론, 닭과 참치에게 통증을 유발하는 자극을 가하면, 그들은 신경 체계를 통해 고통을 느끼고, 표정이나 비명을 통해 이를 표출합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은 회피하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죠. 굳이 인간의 언어로 ‘아프다!’라고 외치지 않더라도 우리는 다른 동물의 고통을 경험적으로, 과학적으로 충분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고통을 느끼는 존재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습니다
이처럼 모든 동물이 비슷하게 고통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인간 종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비(非)인간’ 동물을 너무도 쉽게 차별하고, 학대하고, 착취합니다. 이것을 ‘종차별주의’라고 해요.
종차별은 우리의 일상과 너무도 밀접합니다. 현대에 들어 인간은 의식주를 영위하는 데 수많은 동물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죠. 소, 돼지, 닭을 사육하고 도살하여 먹는 것, 양과 거위의 털을 빼앗아 입는 것, 좁은 수조에 갇힌 돌고래의 묘기를 보는 것, 실험실 토끼와 쥐를 거쳐 생산된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 등등.
지금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는 잘못되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차별 없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면, 우리가 지워버린 비인간 동물 구성원도 고려해야 합니다. 지각력 있는 동물에게 가하는 모든 억압, 착취를 멈춰야 합니다.
이제, 바꿀 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도 종차별이 스며들어있어요. 나도 모르게 쓴 종차별적인 말과 표현은 나의 종차별적인 행동을 정당화시키거나 강화할 수 있습니다. 물고기라고 불린 그들을 당연히 먹어왔던 것처럼요.
이제는 종차별적인 언어 대신 종평등한 말과 표현으로 바꿔야 할 때입니다. 물론 종차별적인 단어와 표현을 수집하는 작업, 적절한 대안(대항)표현을 제안하는 토론의 단계가 필요합니다. 아직은 어색하고 어렵겠지만 ‘물고기’ 대신 ‘물에 사는 존재’인 ‘물살이’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언어는 쓰는 만큼 변화합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함께 만들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2021 동물권 행진 :
물고기 아니고 물살이
윤나리 캠페이너 2021. 08. 25
안녕하세요, 저는 동물해방물결의 윤나리 활동가입니다. ‘물고기는 당연히 물고기지!’ 황당함과 호기심으로 광고를 클릭하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뭔가를 깨닫고 클릭하신 분들도요. 대체 왜 물고기가 아니라 물살이라는 건지, 찬찬히 이야기를 풀어볼까 해요.
물+고기?
우리는 평소 어류 동물을 만나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물고기’ 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물고기’라는 말.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나요?
‘물고기’라는 단어는 ‘물’과 “식용하는 동물의 살”이라는 뜻의 ‘고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속에 사는 수많고 다양한 어류 동물을 우리는 한꺼번에 ‘물고기’라 부르고 있는 것이죠.


물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데... ‘고기’라고요?
마땅히 살아 숨 쉬는 독립적인 존재를 지칭하는 단어가 인간이 ‘식용하는 살’인 것은 기괴하고 부당합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그저 다른 이의 ‘살덩어리’, ‘고깃덩어리’라고 부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요.
위의 비유가 와닿지 않거나 불쾌했다면, ‘물고기는 먹는 거지’ 또는 ‘물고기랑 사람이랑 같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거예요.
동물도 아픔을 느껴요
많은 분들이 무의식적으로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곤 합니다. 이런 습관의 배경에는 인간은 동물이 아니라거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질적으로 우월하다는 인식이 깔려있죠.
그런데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 바로 인간도 동물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동물이라면, 정도와 방법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고통을 느낀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인간과 개는 물론, 닭과 참치에게 통증을 유발하는 자극을 가하면, 그들은 신경 체계를 통해 고통을 느끼고, 표정이나 비명을 통해 이를 표출합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은 회피하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죠. 굳이 인간의 언어로 ‘아프다!’라고 외치지 않더라도 우리는 다른 동물의 고통을 경험적으로, 과학적으로 충분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고통을 느끼는 존재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습니다
이처럼 모든 동물이 비슷하게 고통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인간 종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비(非)인간’ 동물을 너무도 쉽게 차별하고, 학대하고, 착취합니다. 이것을 ‘종차별주의’라고 해요.
종차별은 우리의 일상과 너무도 밀접합니다. 현대에 들어 인간은 의식주를 영위하는 데 수많은 동물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죠. 소, 돼지, 닭을 사육하고 도살하여 먹는 것, 양과 거위의 털을 빼앗아 입는 것, 좁은 수조에 갇힌 돌고래의 묘기를 보는 것, 실험실 토끼와 쥐를 거쳐 생산된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 등등.
지금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는 잘못되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차별 없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면, 우리가 지워버린 비인간 동물 구성원도 고려해야 합니다. 지각력 있는 동물에게 가하는 모든 억압, 착취를 멈춰야 합니다.
이제, 바꿀 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도 종차별이 스며들어있어요. 나도 모르게 쓴 종차별적인 말과 표현은 나의 종차별적인 행동을 정당화시키거나 강화할 수 있습니다. 물고기라고 불린 그들을 당연히 먹어왔던 것처럼요.
이제는 종차별적인 언어 대신 종평등한 말과 표현으로 바꿔야 할 때입니다. 물론 종차별적인 단어와 표현을 수집하는 작업, 적절한 대안(대항)표현을 제안하는 토론의 단계가 필요합니다. 아직은 어색하고 어렵겠지만 ‘물고기’ 대신 ‘물에 사는 존재’인 ‘물살이’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언어는 쓰는 만큼 변화합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함께 만들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