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수난사 :
한우 정액 도난 사건이
우리에게 묻는 것
김도희 해방정치연구소장 2024. 04. 22
최근 한우1 남성 소의 정액 도난 사건이 주목받고 있다. 전북의 한 민간 축산 연구소에서 종모우(種牡牛), 이른바 ‘씨수소’의 정액 260개가 도난당했는데 그 피해 규모가 1억 7000만원에 달한다고 하니 뉴스가 될 법도 하다.
‘씨수소’랄 게 따로 있나 싶겠지만, ‘고기’가 될 남성 소들은 송아지 때 거세하기 때문에 애초에 씨수소가 될 수 없다. 씨수소의 자질이 보이는 남성 소만 거세하지 않고 국립축산과학원에서 6개월마다 ‘유전능력평가’를 실시해 번식, 발육, 육질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소에게 KPN(Korean Proven bull Number)으로 시작되는 번호를 부여한다. 정부가 보증한 이들 ‘보증 씨수소’의 정액을 농협 한우개량사업소에서 판매하고, 농가에서는 이 정액을 사다 인공수정을 통해 번식시킨다.
그래서 전국에 350만명(命)에 달하는 소들은, ‘비싼 고기’로 팔기 좋은 유전자를 가진 백여명(命)을 부(父)로 둔 이복남매들이 대부분이다. 유전자의 우열에 따라 신분이 정해지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 ‘가타카’가 떠오르는 대목이지만, 소들의 세계에서는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씨수소가 따로 필요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 소들의 번식이 주로 인공수정을 통하기 때문이다. 남성 소와 여성 소가 직접 만나 교배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씨수소를 ‘의빈우(擬牝牛, 씨수소가 사정할 때 올라타도록 세워두는 소, 보통 ‘보증 씨수소’가 되지 못한 건장한 남성 소가 된다)’나 ‘의빈대(擬牝臺, 마찬가지로 씨수소가 올라타도록 만든 장비이며, 기계체조 종목 ‘안마’를 연상시킨다)’에 올라타게 한 후, 생식기를 잡아 인공질 모형에 넣은 뒤 정액을 뽑아낸다. 이렇게 씨수소는 3년간 주 2~3회씩 정액을 채취당하고 도살된다.
여성 소는 어떨까. 인공수정사가 여성 소의 직장에 팔을 넣어 분변을 빼내고 질을 벌린 뒤 정액이 든 얇은 관을 질내부에 꽂아 정액을 주입해 수태시킨다. 여기에 더해 홀스타인 종의 여성 소, 이른바 ‘젖소’들의 일부는 ‘대리모’까지 하고 있다. 여성 황소를 도살한 직후 난소에서 채취한 난자와 씨수소의 정자로 수정된 수정란을 젖소의 자궁에 착상시켜 임신시킨다. 어차피 젖소는 평생을 임신하고 출산해야 하는데 이왕이면 ‘비싼 한우’를 낳게 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창의적’인 발상에서 비롯됐다. 이렇게 젖소가 얼룩소가 아닌 황소를 낳는 것을 ‘한우 수정란 이식사업’이라 한다. 이미 20년 이상 이어져 온 사업으로 국가 차원에서도 장려돼 왔다.
그저 절도나 사업으로 넘기기엔 석연치 않은 이 사안들을 어떻게 벼리어 볼 수 있을까. 공통의 원인 혹은 유인은 생명공학 기술의 발달일 것이다. 유전자 정보 분석 기술, 정액과 난소를 채취하고 냉동상태로 보존하는 기술, 특정 종의 수정란을 다른 종의 자궁에 이식하는 기술 등이다. 이러한 기술과학(technoscience)은 여러 사회적 맥락들과 얽혀 있고, 얽히게 된다.
우선 ‘공장식 축산’과 만난다. 쉽게 말해 더 짧은 시간에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양의 더 비싼 고기와 우유를 생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이다. 기술과학이 침투함으로써 그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몇몇 육가공기업들이 식탁을 점령하고, 고기 소비량이 쌀 소비량을 넘어서게 됐다. 육식 위주의 식단 또는 동물성 영양성분이 몸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서로 다른 결과가 충돌하고 있다.
소들이 유전병에 취약해진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부계 수가 적을수록 근친도는 높아진다. 근교계수가 6.25%를 넘으면 근친으로 보는데, 가령 일본의 대표적인 흑모와규는 특절 혈통의 씨수소 집중 번식으로 인해 근교계수가 9.5%에 달해 유전병에 취약하거나 유전적 다양성이 훼손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안들이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맥락도 있다. 당장 ‘한우 수정란 이식사업’의 경우 젖소 농가가 한우 수정란을 받으려면 업체에서 수정란을 구입해야 하고, 수정란 시술을 위해서는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착상에 실패하더라도 비용 부담은 농가가 진다. 수정란과 씨수소 정액에 대한 접근성의 차이는 경제적·기수적 자원을 가진 농가와 그렇지 않은 농가 사이의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사안을 보다 윤리적으로 성찰하는 시각도 있다. 동물을 인간의 필요에 의해 분류하고, 유전자 정보에 따라 가치를 매기고, 생명 과정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동물을 인간의 목적에 종속시키는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물을 상품이나 자산으로 보는 시각을 강화하고, 동물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며, 결과적으로 이 과정에서 동물의 고유한 가치와 권리는 삭제된다.
또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생명 과정의 상업화는 성별화된 권력 구조와 맞물려 동물과 여성의 몸(씨수소의 경우 남성의 몸 역시)을 지배하고 통제하며, 재생산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렇듯 기술과학의 발전은 다양한 사회적 맥락들과 만나 인간과 동물, 자연과 사회의 관계를 재구성하고, 우리에게 종을 넘어선 정의, 응답으로서의 책임,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미래가 무엇인지를 물으며 근본적인 인식과 체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1 여기서 한우는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등재된 황소, 흑소, 제주 흑소, 칡소, 백우의 5종을 통칭하며, 대개 황소를 지칭한다.
*2024년 4월 14일 여성신문에 기고한 원고를 옮긴 글입니다. 👉 원문 보러 가기
소 수난사 :
한우 정액 도난 사건이
우리에게 묻는 것
김도희 해방정치연구소장 2024. 04. 22
최근 한우1 남성 소의 정액 도난 사건이 주목받고 있다. 전북의 한 민간 축산 연구소에서 종모우(種牡牛), 이른바 ‘씨수소’의 정액 260개가 도난당했는데 그 피해 규모가 1억 7000만원에 달한다고 하니 뉴스가 될 법도 하다.
‘씨수소’랄 게 따로 있나 싶겠지만, ‘고기’가 될 남성 소들은 송아지 때 거세하기 때문에 애초에 씨수소가 될 수 없다. 씨수소의 자질이 보이는 남성 소만 거세하지 않고 국립축산과학원에서 6개월마다 ‘유전능력평가’를 실시해 번식, 발육, 육질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소에게 KPN(Korean Proven bull Number)으로 시작되는 번호를 부여한다. 정부가 보증한 이들 ‘보증 씨수소’의 정액을 농협 한우개량사업소에서 판매하고, 농가에서는 이 정액을 사다 인공수정을 통해 번식시킨다.
그래서 전국에 350만명(命)에 달하는 소들은, ‘비싼 고기’로 팔기 좋은 유전자를 가진 백여명(命)을 부(父)로 둔 이복남매들이 대부분이다. 유전자의 우열에 따라 신분이 정해지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 ‘가타카’가 떠오르는 대목이지만, 소들의 세계에서는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씨수소가 따로 필요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 소들의 번식이 주로 인공수정을 통하기 때문이다. 남성 소와 여성 소가 직접 만나 교배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씨수소를 ‘의빈우(擬牝牛, 씨수소가 사정할 때 올라타도록 세워두는 소, 보통 ‘보증 씨수소’가 되지 못한 건장한 남성 소가 된다)’나 ‘의빈대(擬牝臺, 마찬가지로 씨수소가 올라타도록 만든 장비이며, 기계체조 종목 ‘안마’를 연상시킨다)’에 올라타게 한 후, 생식기를 잡아 인공질 모형에 넣은 뒤 정액을 뽑아낸다. 이렇게 씨수소는 3년간 주 2~3회씩 정액을 채취당하고 도살된다.
여성 소는 어떨까. 인공수정사가 여성 소의 직장에 팔을 넣어 분변을 빼내고 질을 벌린 뒤 정액이 든 얇은 관을 질내부에 꽂아 정액을 주입해 수태시킨다. 여기에 더해 홀스타인 종의 여성 소, 이른바 ‘젖소’들의 일부는 ‘대리모’까지 하고 있다. 여성 황소를 도살한 직후 난소에서 채취한 난자와 씨수소의 정자로 수정된 수정란을 젖소의 자궁에 착상시켜 임신시킨다. 어차피 젖소는 평생을 임신하고 출산해야 하는데 이왕이면 ‘비싼 한우’를 낳게 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창의적’인 발상에서 비롯됐다. 이렇게 젖소가 얼룩소가 아닌 황소를 낳는 것을 ‘한우 수정란 이식사업’이라 한다. 이미 20년 이상 이어져 온 사업으로 국가 차원에서도 장려돼 왔다.
그저 절도나 사업으로 넘기기엔 석연치 않은 이 사안들을 어떻게 벼리어 볼 수 있을까. 공통의 원인 혹은 유인은 생명공학 기술의 발달일 것이다. 유전자 정보 분석 기술, 정액과 난소를 채취하고 냉동상태로 보존하는 기술, 특정 종의 수정란을 다른 종의 자궁에 이식하는 기술 등이다. 이러한 기술과학(technoscience)은 여러 사회적 맥락들과 얽혀 있고, 얽히게 된다.
우선 ‘공장식 축산’과 만난다. 쉽게 말해 더 짧은 시간에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양의 더 비싼 고기와 우유를 생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이다. 기술과학이 침투함으로써 그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몇몇 육가공기업들이 식탁을 점령하고, 고기 소비량이 쌀 소비량을 넘어서게 됐다. 육식 위주의 식단 또는 동물성 영양성분이 몸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서로 다른 결과가 충돌하고 있다.
소들이 유전병에 취약해진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부계 수가 적을수록 근친도는 높아진다. 근교계수가 6.25%를 넘으면 근친으로 보는데, 가령 일본의 대표적인 흑모와규는 특절 혈통의 씨수소 집중 번식으로 인해 근교계수가 9.5%에 달해 유전병에 취약하거나 유전적 다양성이 훼손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안들이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맥락도 있다. 당장 ‘한우 수정란 이식사업’의 경우 젖소 농가가 한우 수정란을 받으려면 업체에서 수정란을 구입해야 하고, 수정란 시술을 위해서는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착상에 실패하더라도 비용 부담은 농가가 진다. 수정란과 씨수소 정액에 대한 접근성의 차이는 경제적·기수적 자원을 가진 농가와 그렇지 않은 농가 사이의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사안을 보다 윤리적으로 성찰하는 시각도 있다. 동물을 인간의 필요에 의해 분류하고, 유전자 정보에 따라 가치를 매기고, 생명 과정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동물을 인간의 목적에 종속시키는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물을 상품이나 자산으로 보는 시각을 강화하고, 동물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며, 결과적으로 이 과정에서 동물의 고유한 가치와 권리는 삭제된다.
또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생명 과정의 상업화는 성별화된 권력 구조와 맞물려 동물과 여성의 몸(씨수소의 경우 남성의 몸 역시)을 지배하고 통제하며, 재생산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렇듯 기술과학의 발전은 다양한 사회적 맥락들과 만나 인간과 동물, 자연과 사회의 관계를 재구성하고, 우리에게 종을 넘어선 정의, 응답으로서의 책임,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미래가 무엇인지를 물으며 근본적인 인식과 체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1 여기서 한우는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등재된 황소, 흑소, 제주 흑소, 칡소, 백우의 5종을 통칭하며, 대개 황소를 지칭한다.
*2024년 4월 14일 여성신문에 기고한 원고를 옮긴 글입니다. 👉 원문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