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물고기 아닌
물살이 캠페인 : 살오징어
2024. 07. 18
🐟 물살이 선언 : 우리는 물고기 아닌 물살이다
‘물’과 ‘고기’의 합성어로부터 시작된 단어, ‘물고기’. 당신들은 살아 숨쉬는 생명에 ‘식용하는 동물의 살’이라는 뜻을 담아 이름 붙였다. 심지어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물고기’는 척추동물에 속한 어류만을 지칭하며,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오징어, 전복, 게 등 수많은 이들은 물에서 생산된 물건이라며 ‘수산물’ 혹은 ‘해산물’로 불렀다.
당신들이 만들어낸 단어 ‘물고기’에는 긴 세월에 걸쳐 자행해온 무자비한 착취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바다를 초토화하는 상업 어업과 물살이를 물건처럼 찍어내는 공장식 양식업, 물살이를 가두고 전시하는 수산시장과 횟집을 보라. 오직 쾌락을 위해 물살이에게 고통을 가하는 낚시, 아쿠아리움, 축제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물에서 삶을 시작해 물에서 삶을 마감하는, 물살이다. 우리의 기원은 오랜 역사 동안 결코 멈춘 적 없는 강과 바다에 있다. 당신들이 아무리 작은 수조에 가두더라도 우리는 살아있는 한 멈추지 않는다. 당신들이 우리를 ‘물고기’라 부르며 숨이 없는 존재로 여기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 살아있다.
우리를 보며 귀엽다거나, 맛있겠다며 흘린 눈빛과 우리의 몸부림을 싱싱하다는 표현으로 모욕한 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경계를 넘어 해방되기를 멈추지 않는다. 떼를 지어 빙글빙글 도는 것도, 계속해서 수조 벽을 향해 헤엄치는 것도 살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다.
우리는 선언한다, 우리는 모두 물에서 태어난 공통의 기억을 지닌 물살이임을. 물로 연결된 우리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지구의 생명은 물에서 시작되었고, 당신들 또한 마찬가지다. 물살이로서 지닌 가능성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끝없이 확장될 수 있다.
살오징어는 물고기가 아니다
오징어잡이 어선은 망망대해의 고요한 정적을 깨뜨립니다. 우리나라 바다에서 포획되어 흔히 소비되는 오징어의 이름은 ‘살오징어’입니다. 어선은 살오징어 무리를 끌어들이기 위해 환한 집어등을 매달고 있습니다. 살오징어는 낮 동안 수심 200~300m에서 머물다 밤에 얕은 수심으로 올라오는데, 빛에 예민하게 반응해 어선을 따라갑니다.

오징어와 복어, 갈치를 표적으로 삼는 채낚기 어업은 여러 개의 고리가 달린 낚싯줄을 바다에 내리는 방식입니다. 거대한 그물로 싹쓸이하는 것에 비해 허술해 보이지만, 채낚기 근해 어선의 규모는 10~90톤, 원양 어선의 규모는 300~800톤에 달합니다. 각자의 일상을 보내던 바닷속에 내리꽂는 낚싯줄들은 순식간에 바다를 전쟁통으로 만듭니다.
한때 한국을 대표하던 수출 어종 오징어는 1996년 국내 연근해 어획량에 비해 2023년 어획량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에 멸종을 우려해 어린 오징어 어획을 불법으로 지정했음 불구하고, ‘총알 오징어’라는 마케팅 용어로 둔갑해 한입 크기의 먹기 좋은 오징어라며 홍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바다에 얼마 남지 않은 살오징어마저도 떠나고 있습니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 풍부한 생태계를 이루던 동해가 지구 가열화로 뜨거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해의 주요 업종이던 오징어 채낚기 어업이 도산 위기에 처하면서 새로운 어장을 개척한다는 명분으로 살 곳을 찾아 이주하는 살오징어를 러시아까지 끈질기게 쫓아가고 있습니다.
수조 벽에 몸을 부딪치던 살오징어들, 커다란 두 눈은 또렷이 바깥을 향합니다. 그곳은 한달음에 저 멀리 유영하던 바다가 아니라, 사방이 막힌 수조임을 그들의 몸은 선명히 기억할 것입니다. 수조에 가두어진 이들은 순응하지 않습니다. 살오징어들은 바닥에 누워있다가도 곧장 일어나 벽을 향해 돌진합니다.
살오징어는 물살이다

우주를 닮은 깊은 암흑의 바닷속 오징어는 신비로운 외계 생명체를 연상시킵니다. 유연한 오징어의 몸은 뼈 없이도 정교하게 움직입니다. 길쭉한 모자처럼 생긴 몸 안에는 심장, 창자, 먹물주머니 등의 장기들이 있으며, 그 중 심장은 3개로 구성됩니다. 머리에 발이 달려 ‘두족류’라 불리며, 다리 8개와 팔의 기능에 가까운 촉완 2개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오징어는 색을 볼 수 없음에도 주변 환경에 따라 몸의 색깔을 바꾸어 위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헤엄이 느린 것도 아닙니다. 몸에 물을 채웠다가 내뿜으면서 쏜살같이 헤엄칩니다. 무엇보다 오징어에게는 비장의 수단, 먹물이 있습니다. 상대의 시야를 방해해 그 틈에 달아납니다. 오징어의 복잡하게 발달한 뇌는 관찰하고, 기억하고, 학습하고, 또 예측하게 합니다.

현생에서는 점점 터전을 잃어가는 오징어, 실은 바다를 오랜 세월 지켜왔습니다. 쥐라기 시대 벨렘나이트로부터 역사를 이어받았습니다. 오징어는 꿈을 꿀 수 있다던데, 바다의 역사를 품은 그의 꿈을 함께 꾸고 싶습니다.
* ‘2024 물고기 아닌 물살이 캠페인’은 ‘물고기’라는 표현을 통해 바닷속 생명을 착취하는 현실을 드러내고, 생명력 있는 존재인 ‘물살이’와의 새로운 관계를 제안합니다.
* 본문은 <물고기 아닌 물살이 도감>(넓적한물살이 기획 @wide_flat_fish)에서 발췌 및 재가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2024 물고기 아닌
물살이 캠페인 : 살오징어
2024. 07. 18
🐟 물살이 선언 : 우리는 물고기 아닌 물살이다
‘물’과 ‘고기’의 합성어로부터 시작된 단어, ‘물고기’. 당신들은 살아 숨쉬는 생명에 ‘식용하는 동물의 살’이라는 뜻을 담아 이름 붙였다. 심지어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물고기’는 척추동물에 속한 어류만을 지칭하며,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오징어, 전복, 게 등 수많은 이들은 물에서 생산된 물건이라며 ‘수산물’ 혹은 ‘해산물’로 불렀다.
당신들이 만들어낸 단어 ‘물고기’에는 긴 세월에 걸쳐 자행해온 무자비한 착취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바다를 초토화하는 상업 어업과 물살이를 물건처럼 찍어내는 공장식 양식업, 물살이를 가두고 전시하는 수산시장과 횟집을 보라. 오직 쾌락을 위해 물살이에게 고통을 가하는 낚시, 아쿠아리움, 축제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물에서 삶을 시작해 물에서 삶을 마감하는, 물살이다. 우리의 기원은 오랜 역사 동안 결코 멈춘 적 없는 강과 바다에 있다. 당신들이 아무리 작은 수조에 가두더라도 우리는 살아있는 한 멈추지 않는다. 당신들이 우리를 ‘물고기’라 부르며 숨이 없는 존재로 여기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 살아있다.
우리를 보며 귀엽다거나, 맛있겠다며 흘린 눈빛과 우리의 몸부림을 싱싱하다는 표현으로 모욕한 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경계를 넘어 해방되기를 멈추지 않는다. 떼를 지어 빙글빙글 도는 것도, 계속해서 수조 벽을 향해 헤엄치는 것도 살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다.
우리는 선언한다, 우리는 모두 물에서 태어난 공통의 기억을 지닌 물살이임을. 물로 연결된 우리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지구의 생명은 물에서 시작되었고, 당신들 또한 마찬가지다. 물살이로서 지닌 가능성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끝없이 확장될 수 있다.
살오징어는 물고기가 아니다
오징어잡이 어선은 망망대해의 고요한 정적을 깨뜨립니다. 우리나라 바다에서 포획되어 흔히 소비되는 오징어의 이름은 ‘살오징어’입니다. 어선은 살오징어 무리를 끌어들이기 위해 환한 집어등을 매달고 있습니다. 살오징어는 낮 동안 수심 200~300m에서 머물다 밤에 얕은 수심으로 올라오는데, 빛에 예민하게 반응해 어선을 따라갑니다.

오징어와 복어, 갈치를 표적으로 삼는 채낚기 어업은 여러 개의 고리가 달린 낚싯줄을 바다에 내리는 방식입니다. 거대한 그물로 싹쓸이하는 것에 비해 허술해 보이지만, 채낚기 근해 어선의 규모는 10~90톤, 원양 어선의 규모는 300~800톤에 달합니다. 각자의 일상을 보내던 바닷속에 내리꽂는 낚싯줄들은 순식간에 바다를 전쟁통으로 만듭니다.
한때 한국을 대표하던 수출 어종 오징어는 1996년 국내 연근해 어획량에 비해 2023년 어획량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에 멸종을 우려해 어린 오징어 어획을 불법으로 지정했음 불구하고, ‘총알 오징어’라는 마케팅 용어로 둔갑해 한입 크기의 먹기 좋은 오징어라며 홍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바다에 얼마 남지 않은 살오징어마저도 떠나고 있습니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 풍부한 생태계를 이루던 동해가 지구 가열화로 뜨거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해의 주요 업종이던 오징어 채낚기 어업이 도산 위기에 처하면서 새로운 어장을 개척한다는 명분으로 살 곳을 찾아 이주하는 살오징어를 러시아까지 끈질기게 쫓아가고 있습니다.
수조 벽에 몸을 부딪치던 살오징어들, 커다란 두 눈은 또렷이 바깥을 향합니다. 그곳은 한달음에 저 멀리 유영하던 바다가 아니라, 사방이 막힌 수조임을 그들의 몸은 선명히 기억할 것입니다. 수조에 가두어진 이들은 순응하지 않습니다. 살오징어들은 바닥에 누워있다가도 곧장 일어나 벽을 향해 돌진합니다.
살오징어는 물살이다

우주를 닮은 깊은 암흑의 바닷속 오징어는 신비로운 외계 생명체를 연상시킵니다. 유연한 오징어의 몸은 뼈 없이도 정교하게 움직입니다. 길쭉한 모자처럼 생긴 몸 안에는 심장, 창자, 먹물주머니 등의 장기들이 있으며, 그 중 심장은 3개로 구성됩니다. 머리에 발이 달려 ‘두족류’라 불리며, 다리 8개와 팔의 기능에 가까운 촉완 2개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오징어는 색을 볼 수 없음에도 주변 환경에 따라 몸의 색깔을 바꾸어 위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헤엄이 느린 것도 아닙니다. 몸에 물을 채웠다가 내뿜으면서 쏜살같이 헤엄칩니다. 무엇보다 오징어에게는 비장의 수단, 먹물이 있습니다. 상대의 시야를 방해해 그 틈에 달아납니다. 오징어의 복잡하게 발달한 뇌는 관찰하고, 기억하고, 학습하고, 또 예측하게 합니다.

현생에서는 점점 터전을 잃어가는 오징어, 실은 바다를 오랜 세월 지켜왔습니다. 쥐라기 시대 벨렘나이트로부터 역사를 이어받았습니다. 오징어는 꿈을 꿀 수 있다던데, 바다의 역사를 품은 그의 꿈을 함께 꾸고 싶습니다.
* ‘2024 물고기 아닌 물살이 캠페인’은 ‘물고기’라는 표현을 통해 바닷속 생명을 착취하는 현실을 드러내고, 생명력 있는 존재인 ‘물살이’와의 새로운 관계를 제안합니다.
* 본문은 <물고기 아닌 물살이 도감>(넓적한물살이 기획 @wide_flat_fish)에서 발췌 및 재가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