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물고기 아닌
물살이 캠페인 : 넙치
2024. 07. 11
🐟 물살이 선언 : 우리는 물고기 아닌 물살이다
‘물’과 ‘고기’의 합성어로부터 시작된 단어, ‘물고기’. 당신들은 살아 숨쉬는 생명에 ‘식용하는 동물의 살’이라는 뜻을 담아 이름 붙였다. 심지어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물고기’는 척추동물에 속한 어류만을 지칭하며,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오징어, 전복, 게 등 수많은 이들은 물에서 생산된 물건이라며 ‘수산물’ 혹은 ‘해산물’로 불렀다.
당신들이 만들어낸 단어 ‘물고기’에는 긴 세월에 걸쳐 자행해온 무자비한 착취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바다를 초토화하는 상업 어업과 물살이를 물건처럼 찍어내는 공장식 양식업, 물살이를 가두고 전시하는 수산시장과 횟집을 보라. 오직 쾌락을 위해 물살이에게 고통을 가하는 낚시, 아쿠아리움, 축제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물에서 삶을 시작해 물에서 삶을 마감하는, 물살이다. 우리의 기원은 오랜 역사 동안 결코 멈춘 적 없는 강과 바다에 있다. 당신들이 아무리 작은 수조에 가두더라도 우리는 살아있는 한 멈추지 않는다. 당신들이 우리를 ‘물고기’라 부르며 숨이 없는 존재로 여기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 살아있다.
우리를 보며 귀엽다거나, 맛있겠다며 흘린 눈빛과 우리의 몸부림을 싱싱하다는 표현으로 모욕한 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경계를 넘어 해방되기를 멈추지 않는다. 떼를 지어 빙글빙글 도는 것도, 계속해서 수조 벽을 향해 헤엄치는 것도 살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다.
우리는 선언한다, 우리는 모두 물에서 태어난 공통의 기억을 지닌 물살이임을. 물로 연결된 우리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지구의 생명은 물에서 시작되었고, 당신들 또한 마찬가지다. 물살이로서 지닌 가능성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끝없이 확장될 수 있다.
넙치는 물고기가 아니다
제주 해안선을 따라 분포한 400여 개의 공장식 넙치 양식장은 아름다운 바다와 대비되어 기괴함을 자아냅니다. 항생제와 각종 오염물질로 범벅된 배출수가 양식장 옆 바다로 쏟아져 나옵니다. 이때, 병든 넙치가 바다로 버려지기도 합니다. 제주 양식장에서 길러지는 넙치는 전 세계 넙치 생산량의 51%를 차지합니다.

양식업 초반에는 김, 전복 등 해조류와 어패류를 해상에서 기르다 1980년에 이르러 방어를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 키우며 어류 양식이 시작되었습니다. 한편, 바다를 휩쓸어 초토화하는 어업 방식이 1980년대부터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에 어업의 부흥을 위해 ‘대량 생산’이 가능한 육상수조식 양식 기술이 빠르게 개발되었고, 넙치가 그 첫 번째 표적이었습니다.
양식 넙치와 비교하며 ‘자연산’ 넙치의 신선함을 내세우는 ‘서천 자연산 광어 도미 축제’는 2024년에 18회를 맞이했습니다. 넙치 요리 부스는 물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넙치들을 맨손으로 잡을 수 있는 체험 부스를 운영합니다. 온갖 물살이 축제들은 체험이라는 명목으로 관광객에게 물살이를 괴롭히고 죽일 기회를 제공합니다.
광어(廣魚)로 이름 알려진 넙치, 국립국어원 표준 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광어’는 ‘넙치’를 가리키는 동시에 ‘반으로 갈라서 말린 넙치’를 뜻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인 광어의 사전적 의미 안에 죽은 존재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횟집 앞 넙치의 몸은 겹겹이 쌓여 수조를 채웁니다. 벽에 얼굴을 들이미는 넙치의 배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습니다. 바다에 사는 넙치는 배가 새하얗지만, 양식장에서 길러지는 넙치의 배는 그렇지 않습니다. 움직이기 어렵고,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없는 수조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점이 흑화 현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밝혀졌습니다.
넙치는 물살이다

바다에서 눈에 띄지 않는 넙치는 주로 모랫바닥에 누워 생활합니다. 부력을 조절하는 부레가 없어 유영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넙치의 몸은 모래와 닮은 색과 무늬를 지녔습니다. 주변 환경과 비슷하게 몸빛을 바꿀 수 있습니다. 모래에 숨어 고요하게 있다가도, 몸을 날렵하게 움직여 먹이 활동을 합니다. 납작한 몸을 너울너울 움직이는 넙치의 모습이 물결을 닮았습니다.
그러나 넙치가 납작한 몸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어릴 적에는 두 눈으로 앞을 바라보고 자유롭게 바닷속을 헤엄치다 성장하면서 눈이 점점 한쪽으로 이동합니다. 끝내 모랫바닥에 납작하게 눕습니다. 넙치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을 때, 두 눈이 왼쪽으로 몰려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끝없는 바다의 물살을 따라가는 대신, 납작하게 누워 두 눈으로 바다 위를 응시하는 넙치의 시선을 상상해봅니다. 넙치는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대신, 바다의 맨 밑바닥에서 모든 것을 목격합니다.
* ‘2024 물고기 아닌 물살이 캠페인’은 ‘물고기’라는 표현을 통해 바닷속 생명을 착취하는 현실을 드러내고, 생명력 있는 존재인 ‘물살이’와의 새로운 관계를 제안합니다.
* 본문은 <물고기 아닌 물살이 도감>(넓적한물살이 기획 @wide_flat_fish)에서 발췌 및 재가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2024 물고기 아닌
물살이 캠페인 : 넙치
2024. 07. 11
🐟 물살이 선언 : 우리는 물고기 아닌 물살이다
‘물’과 ‘고기’의 합성어로부터 시작된 단어, ‘물고기’. 당신들은 살아 숨쉬는 생명에 ‘식용하는 동물의 살’이라는 뜻을 담아 이름 붙였다. 심지어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물고기’는 척추동물에 속한 어류만을 지칭하며,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오징어, 전복, 게 등 수많은 이들은 물에서 생산된 물건이라며 ‘수산물’ 혹은 ‘해산물’로 불렀다.
당신들이 만들어낸 단어 ‘물고기’에는 긴 세월에 걸쳐 자행해온 무자비한 착취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바다를 초토화하는 상업 어업과 물살이를 물건처럼 찍어내는 공장식 양식업, 물살이를 가두고 전시하는 수산시장과 횟집을 보라. 오직 쾌락을 위해 물살이에게 고통을 가하는 낚시, 아쿠아리움, 축제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물에서 삶을 시작해 물에서 삶을 마감하는, 물살이다. 우리의 기원은 오랜 역사 동안 결코 멈춘 적 없는 강과 바다에 있다. 당신들이 아무리 작은 수조에 가두더라도 우리는 살아있는 한 멈추지 않는다. 당신들이 우리를 ‘물고기’라 부르며 숨이 없는 존재로 여기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 살아있다.
우리를 보며 귀엽다거나, 맛있겠다며 흘린 눈빛과 우리의 몸부림을 싱싱하다는 표현으로 모욕한 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경계를 넘어 해방되기를 멈추지 않는다. 떼를 지어 빙글빙글 도는 것도, 계속해서 수조 벽을 향해 헤엄치는 것도 살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다.
우리는 선언한다, 우리는 모두 물에서 태어난 공통의 기억을 지닌 물살이임을. 물로 연결된 우리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지구의 생명은 물에서 시작되었고, 당신들 또한 마찬가지다. 물살이로서 지닌 가능성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끝없이 확장될 수 있다.
넙치는 물고기가 아니다
제주 해안선을 따라 분포한 400여 개의 공장식 넙치 양식장은 아름다운 바다와 대비되어 기괴함을 자아냅니다. 항생제와 각종 오염물질로 범벅된 배출수가 양식장 옆 바다로 쏟아져 나옵니다. 이때, 병든 넙치가 바다로 버려지기도 합니다. 제주 양식장에서 길러지는 넙치는 전 세계 넙치 생산량의 51%를 차지합니다.

양식업 초반에는 김, 전복 등 해조류와 어패류를 해상에서 기르다 1980년에 이르러 방어를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 키우며 어류 양식이 시작되었습니다. 한편, 바다를 휩쓸어 초토화하는 어업 방식이 1980년대부터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에 어업의 부흥을 위해 ‘대량 생산’이 가능한 육상수조식 양식 기술이 빠르게 개발되었고, 넙치가 그 첫 번째 표적이었습니다.
양식 넙치와 비교하며 ‘자연산’ 넙치의 신선함을 내세우는 ‘서천 자연산 광어 도미 축제’는 2024년에 18회를 맞이했습니다. 넙치 요리 부스는 물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넙치들을 맨손으로 잡을 수 있는 체험 부스를 운영합니다. 온갖 물살이 축제들은 체험이라는 명목으로 관광객에게 물살이를 괴롭히고 죽일 기회를 제공합니다.
광어(廣魚)로 이름 알려진 넙치, 국립국어원 표준 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광어’는 ‘넙치’를 가리키는 동시에 ‘반으로 갈라서 말린 넙치’를 뜻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인 광어의 사전적 의미 안에 죽은 존재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횟집 앞 넙치의 몸은 겹겹이 쌓여 수조를 채웁니다. 벽에 얼굴을 들이미는 넙치의 배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습니다. 바다에 사는 넙치는 배가 새하얗지만, 양식장에서 길러지는 넙치의 배는 그렇지 않습니다. 움직이기 어렵고,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없는 수조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점이 흑화 현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밝혀졌습니다.
넙치는 물살이다

바다에서 눈에 띄지 않는 넙치는 주로 모랫바닥에 누워 생활합니다. 부력을 조절하는 부레가 없어 유영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넙치의 몸은 모래와 닮은 색과 무늬를 지녔습니다. 주변 환경과 비슷하게 몸빛을 바꿀 수 있습니다. 모래에 숨어 고요하게 있다가도, 몸을 날렵하게 움직여 먹이 활동을 합니다. 납작한 몸을 너울너울 움직이는 넙치의 모습이 물결을 닮았습니다.
그러나 넙치가 납작한 몸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어릴 적에는 두 눈으로 앞을 바라보고 자유롭게 바닷속을 헤엄치다 성장하면서 눈이 점점 한쪽으로 이동합니다. 끝내 모랫바닥에 납작하게 눕습니다. 넙치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을 때, 두 눈이 왼쪽으로 몰려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끝없는 바다의 물살을 따라가는 대신, 납작하게 누워 두 눈으로 바다 위를 응시하는 넙치의 시선을 상상해봅니다. 넙치는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대신, 바다의 맨 밑바닥에서 모든 것을 목격합니다.
* ‘2024 물고기 아닌 물살이 캠페인’은 ‘물고기’라는 표현을 통해 바닷속 생명을 착취하는 현실을 드러내고, 생명력 있는 존재인 ‘물살이’와의 새로운 관계를 제안합니다.
* 본문은 <물고기 아닌 물살이 도감>(넓적한물살이 기획 @wide_flat_fish)에서 발췌 및 재가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