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의
무게를 법에 담아야
김도희 해방정치연구소장 2024. 09. 11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다. 나와 다른 존재와 교감하며 큰 기쁨을 나누고 위로받을 수 있지만 그만큼의 위험과 책임이 뒤따른다. 동물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인 공간, 먹거리, 여가, 이동 여부 등 삶의 질을 결정하는 거의 모든 요소가 인간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귀엽지 않아서, 귀찮고 번거로워서, 아프고 돈이 들어서 동물을 유기하고 학대하는 모습을 우리 사회는 올바른 반려인 내지 성숙한 시민으로 여기지 않는다. 동물과의 생활에서 반려인의 행복만큼이나 동물의 행복은 중요한 조건이다. 동물을 반려하는 것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불미스러운 학대와 유기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예방과 사후대책이 법과 제도로 뒷받침돼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동물보호법」이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91년 제정된 이래로 꾸준히 개정되면서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아무런 제한 없이 동물을 입양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들이 많다. 가령 독일의 니더작센주는 반려견 등록과 책임보험 가입, 반려인 면허시험을 의무화하고 있다. 시험에서는 개의 건강, 발달, 복지에 적합한 돌봄 조건을 비롯해 개의 사회 행동, 의사소통 및 견종의 특성, 위험 상황에 대한 인식과 대처 방법 등 반려인의 입양 자격을 묻는다.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 메릴랜드, 메인, 워싱턴, 일리노이 등 5개 주는 번식장 등 상업용 시설에서 구입한 개, 고양이 등의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동물의 상업판매가 과도한 번식, 번식장 내의 열악한 환경과 동물학대, 모견과 자견의 조기 별거 등의 문제와 더불어 동물의 개체 수 과잉과 유기의 주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물의 생산업과 판매업이 광범위하게 허용되고 있다. 미디어에서 주목받은 특정 견종을 너나없이 펫숍에서 구매하고, 2~3년이 지나면 해당 견종이 유기동물보호소에 넘쳐나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동물학대가 발생한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과 별개로 죄질이나 재범의 위험성 등을 감안해 동물의 소유, 사육 등을 제한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학대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에 대해 법원에서 이수명령(동물보호 교육이나 치료프로그램 등 부과)이나 보안처분의 일종으로 동물 소유 등 금지명령을 내리는 식이다. 동물 관련 면허를 박탈하거나 영업을 제한하고 행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방법도 있다. 이미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이 제도들을 시행하고 있지만 한국은 동물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행사를 강하게 인정해 시민들의 계속되는 요구 속에도 법제화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학대사건이 발생했을 때 구조나 보호를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차량에 남겨진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핫카법(Hot Cars Act)」이 31개 주에서 시행 중이다. 경찰, 소방서 등에 알린 후 합리적인 유형력(직간접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을 사용할 수 있고 이때 발생하는 민형사상 책임은 면제된다. 그러나 한국에는 구조행위를 유도하거나 면책하는 근거가 없어 동물이 있는 공간에 출입하거나 유형력을 행사할 때 곤란을 겪고 있다.
마지막으로, 법에 함께 산다는 것의 무게를 담기 위해서는 동물과 반려하든 반려하지 않든 모든 시민들의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 적극적인 교육과 홍보를 통해 동물을 물건이나 상품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각과 동물을 존중하고 책임감 있게 돌보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집 식구뿐 아니라 옆집 식구, 나아가 다른 동물들에게도 시야를 넓히고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를 함양할 수 있다.
*KDI에서 발간하는 나라경제 2024년 9월호에 기고한 원고를 옮긴 글입니다. 👉 원문 보러 가기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의
무게를 법에 담아야
김도희 해방정치연구소장 2024. 09. 11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다. 나와 다른 존재와 교감하며 큰 기쁨을 나누고 위로받을 수 있지만 그만큼의 위험과 책임이 뒤따른다. 동물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인 공간, 먹거리, 여가, 이동 여부 등 삶의 질을 결정하는 거의 모든 요소가 인간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귀엽지 않아서, 귀찮고 번거로워서, 아프고 돈이 들어서 동물을 유기하고 학대하는 모습을 우리 사회는 올바른 반려인 내지 성숙한 시민으로 여기지 않는다. 동물과의 생활에서 반려인의 행복만큼이나 동물의 행복은 중요한 조건이다. 동물을 반려하는 것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불미스러운 학대와 유기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예방과 사후대책이 법과 제도로 뒷받침돼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동물보호법」이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91년 제정된 이래로 꾸준히 개정되면서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아무런 제한 없이 동물을 입양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들이 많다. 가령 독일의 니더작센주는 반려견 등록과 책임보험 가입, 반려인 면허시험을 의무화하고 있다. 시험에서는 개의 건강, 발달, 복지에 적합한 돌봄 조건을 비롯해 개의 사회 행동, 의사소통 및 견종의 특성, 위험 상황에 대한 인식과 대처 방법 등 반려인의 입양 자격을 묻는다.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 메릴랜드, 메인, 워싱턴, 일리노이 등 5개 주는 번식장 등 상업용 시설에서 구입한 개, 고양이 등의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동물의 상업판매가 과도한 번식, 번식장 내의 열악한 환경과 동물학대, 모견과 자견의 조기 별거 등의 문제와 더불어 동물의 개체 수 과잉과 유기의 주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물의 생산업과 판매업이 광범위하게 허용되고 있다. 미디어에서 주목받은 특정 견종을 너나없이 펫숍에서 구매하고, 2~3년이 지나면 해당 견종이 유기동물보호소에 넘쳐나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동물학대가 발생한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과 별개로 죄질이나 재범의 위험성 등을 감안해 동물의 소유, 사육 등을 제한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학대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에 대해 법원에서 이수명령(동물보호 교육이나 치료프로그램 등 부과)이나 보안처분의 일종으로 동물 소유 등 금지명령을 내리는 식이다. 동물 관련 면허를 박탈하거나 영업을 제한하고 행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방법도 있다. 이미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이 제도들을 시행하고 있지만 한국은 동물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행사를 강하게 인정해 시민들의 계속되는 요구 속에도 법제화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학대사건이 발생했을 때 구조나 보호를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차량에 남겨진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핫카법(Hot Cars Act)」이 31개 주에서 시행 중이다. 경찰, 소방서 등에 알린 후 합리적인 유형력(직간접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을 사용할 수 있고 이때 발생하는 민형사상 책임은 면제된다. 그러나 한국에는 구조행위를 유도하거나 면책하는 근거가 없어 동물이 있는 공간에 출입하거나 유형력을 행사할 때 곤란을 겪고 있다.
마지막으로, 법에 함께 산다는 것의 무게를 담기 위해서는 동물과 반려하든 반려하지 않든 모든 시민들의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 적극적인 교육과 홍보를 통해 동물을 물건이나 상품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각과 동물을 존중하고 책임감 있게 돌보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집 식구뿐 아니라 옆집 식구, 나아가 다른 동물들에게도 시야를 넓히고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를 함양할 수 있다.
*KDI에서 발간하는 나라경제 2024년 9월호에 기고한 원고를 옮긴 글입니다. 👉 원문 보러 가기